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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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사람의 본능 중에 하나가 귀소 본능이라 한다.
누구나 때가 되면 그 자신이 태어나 떠나온 그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명절마다 고향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몇 날을 줄을 서서 표를 구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도 그 때가 되면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는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강력한 이 욕구는 어디서 오는가.
이는 인류의 최초의 고향, 그 에덴에 대한 희미한 추억 때문은 아닐까.
우리에게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 바로 그 에덴에 해당하는 천국이다. 그곳이야 말로 우리의 진정한 고향이다.
돌아가고 싶은 그 고향에 가기 위해서는 그 고향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고향 가는 길은 낭패가 되고 만다.
우리의 참된 본향으로 가는 길은 오직 예수님뿐이다.
왜 예수가 길인가?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그 당시에는 영혼이 자기 힘으로 하늘에 간다는 영지파(노시스)의 사상과 기타 사상이 유행했었다. 주님은 이 생각을 단호히 배척하시고 자신이 오직 유일한 길이라고 선언하셨다. 원전에는 관사가 붙어있고, 영어번역에는 정관사 the가 붙어 the way로 기록되어 오직 유일한 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주님만이 메시아가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음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세상의 어떤 방식, 어떤 종교가 주장하는 그런 방식으로는 천국에 이를 수 없음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우리를 살리셔서 하나님 당신 곁에 다시 두시려는 방법으로 성자하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는 희생의 제물로 삼으시고, 그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당신과 우리 사이에 화목을 회복시키시고자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삶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예수를 영접하는 길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은 “나는 길이요”라고 하신 것이다. 이는 우리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간절하신 외침이신 것이다. 오직 우리를 살리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의 외침이시기도 한 것이다.
(요 8:32, 개역)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죄에서의 자유
여기서 말하는 진리는 오직 우리의 구원에 관한 진리를 말한다. 세상학문이 추구하는 그런 류의 진리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여기서 주님은 길과 같이 진리도 오직 유일한 진리라고 강조하시고자 “the truth”라고 하셨다.
진리란 근본적으로 변할 수 없는 것을 그 속성으로 가진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서, 또는 형편에 따라서 가변적일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진리라 하지 않는다. 따라서 고정 불변하는 것이 진리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이 일은 영원 전에 하나님이 이미 예정하셨고, 이 일은 주님을 통해 성취되게 하셨다. 이 계획하심에는 어떤 변화도 있을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고, 하나님은 불변하시는 자이시므로, 그 계획하심에도 일점일획의 변화도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에 관한 이 계획하심은 진리이다. 따라서 그 일의 주체가 되시는 주님 예수는 그 자체로 진리이신 것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 주체가 되어주신 하나님, 그리고 이 일을 이루시려고 참 하나님이신 성자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주신 이 놀라운 은혜를 우리는 깨닫는가?
(요 1:4, 개역)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5:24, 개역)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6, 개역)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시 36:9)
성경이 말하는 생명은 “영원한”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하는 그런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즉 영생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속성에 속한다. 이 하나님의 속성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그러나 그 선물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아담은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그 귀한 선물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는 그의 범죄함으로 인한 결과였다. 그 귀한 영생의 선물을 잃어버린 아담은 가장 불행한 사람의 대표격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담과 같이 그런 자리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다시 우리에게 그 선물을 주시려고 계획하신 것이다. 이는 메시아가 되신 예수를 통해 이루게 하셨다. 주님은 스스로 계신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이 영생을 선물로 주시려고 친히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자신을 유일한 ‘생명’이라고 선언하고 계신 것이다.
우리 모두 지혜 있는 자가 되어 주님이 주신 이 말씀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는 자가 되자.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이 귀한 생명을 선물로 받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복된 믿음의 백성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