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장로교회 2017. 2. 12. 12:45

https://drive.google.com/file/d/0B1aVWZqG1JW8NV9MOUpxTHlYalE/view?usp=sharing

느헤미야

 

느헤미야서는 기원전 445년에서 420년 사이에 느헤미야가 은퇴를 하고 쓴 기록물로 보여 진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대신총회 교단지인 한국교회신보에 실린 소망교회 이정현목사의 느헤미야 강해에서 느헤미야가 이 책을 저술한 목적이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고자 함이고, 또한 헤이해진 유대인들의 신앙을 회복시키기 원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보여 지는 대로의 일차적 목적이고 그 안에 담겨진 이차적인 궁극적 목적은 우리의 무너진 신앙을 회복시키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간절한 바램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루살렘의 성벽이 무너졌다함은 우리의 신앙이 무너진 상태를 상징한다. 예루살렘성은 성전이 있었던 성이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의미하고 그 성전이 있는 곳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이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보호하는 울타리이다.

믿는 자의 마음에 하나님이 거하시니 우리의 마음은 곧 성전인 셈이다. 이 마음의 성전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다. 성벽이 무너졌다함은 우리의 신앙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성이 훼파되고 성문들이 소화되었다는 것을 그의 친척 하나니를 통해 듣고 울며 수일 동안 슬퍼했다는 것은 우리의 무너진 신앙 상태를 보고 안타까워하는 주님의 심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느헤미야는 주님을 상징한다.

(1:2)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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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 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진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이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죄를 아버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중보자 예수님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1:5)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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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날 종으로 형통하여 이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였나니 그 때에 내가 왕의 술관원이 되었었느니라

 

죄인된 우리를 주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느헤미야를 통해 보여주신다. 왕의 총애를 받고 있는 느헤미야가 근심걱정 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 땅의 왕을 제외하고 그를 부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있었을까. 그런 진실로 그런 자리에 있었던 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얼마나 마음이 타 들어갔으면 얼굴에 수색이 가득하고 그것을 왕이 알아볼 정도였을까. 성부 앞에 선 주님의 얼굴이 또한 이 같을 것이라는 것을 느헤미야를 통해 보여주신 것이다. 죄인된 우리 때문에 주님은 얼마나 가슴 아프실까.

(2:1)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 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2:2)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드디어 느헤미야가 그 안락한 자리,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 자리를 마다하고 힘들 것이 예상되는 예루살렘으로 떠난다. 왕은 느헤미야가 가는 것을 못내 아쉬워하여 언제나 돌아오겠느냐고 하며 그 마음을 내어보인다. 주님도 높고 귀한 천국의 그 보좌를 버리고 우리를 위해 이 땅으로 오셨다.

(2:6) 그 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느헤미야는 그가 가는 길이 험할 것이라는 것을 예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주님도 이 땅에서 우리를 위하여 모진 고난을 당하실 것을 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를 사하고 우리의 무너진 신앙을 다시 세워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시려고 이 땅으로 오셨다.

(2:7)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2: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느헤미야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산발랏과 도비야가 근심했다. 도비야는 믿음을 가장한 사단을 상징한다. 암몬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으나 그는 이스라엘에 들어와 있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실 때 사단도 두려워했다.

(2: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6:17) 그 때에 유다의 귀인들이 여러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저희에게 이르렀으니

(6:18)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취하였으므로 유다에서 저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6:19) 저희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나의 말도 저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항상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믿음이 성숙되지 못한 자들은 고난이 오면 하나님을 부르지만 그들의 배가 부를 때는 하나님을 멀리 한다. 하나님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백성은 부할 때나 가난할 때, 고난이 오거나 평온 할 때라도 변함없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산다. 이스라엘이 성을 재건하는 그 일을 할 때에 그들이 고난을 당한 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에 돌아왔고 그래서 이제 그 성을 재건할 마음이 일어나 모두 힘을 모아 어려움 속에서도 성을 재건했다. 그러나 드고아의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성숙하지 못한 신앙인을 상징하고 있다. 이 마음이 우리의 무너진 신앙을 바르게 회복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3: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나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 바쳐드림으로써 가능해 진다. 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있는데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될까. 이스라엘은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하나같이 힘을 모았다. 이 일에는 신분의 높낮이가 없었다. 자신의 유익을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모두가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았다. 이 모습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란 온 마음과 정성을 다 드리는데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다.

(3:1)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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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성 모퉁이 누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고들이 중수하였느니라

 

믿음 생활을 위해 발버둥 칠 때 사단은 반드시 훼방꾼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믿음의 백성들의 신앙이 자라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그 믿음이 자라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사단이 아무리 방해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수는 없다. 이 과정에서 믿음의 백성은 어려움을 당하기는 하지만 끝내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신앙은 자라게 된다. 그래서 택하심을 입은 자들은 성화되어가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성벽을 점차 완성해 나가는 것은 믿음의 백성들의 신앙이 점점 자라나는, 성화되어가는 것을 상징한다. 이 과정에서 산발랏과 도비야는 분노와 조롱으로 방해한다. 그러나 그들은 직접적으로는 그 일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일이 페르시아 왕의 허락으로 진행되는 일이었기에 그들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이는 믿음의 백성들의 성화는 하나님의 허락으로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사단이 막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4: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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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되고 고가 절반에 미쳤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

 

믿음의 백성들의 성화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므로 사단이 결코 막지는 못하나 그 과정에서 믿음의 백성들은 많은 고난을 당한다. 그러나 이 고난은 믿음의 백성들이 스스로 감당하여 이겨내야 한다. 하나님이 하시겠지, 그러니 우리는 가만히 지켜보자 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니다. 우리의 영적 투쟁은 하나님이 우리를 성화시켜주시는 것에 대한 우리의 당연한 의무요, 책임인 것이다. 이스라엘도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 페르시아 왕의 명령에 의한 것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대적들과 맞서 싸우면서 이루어냈다. 느헤미야가 그 백성들을 격려하며 성의 재건을 완성해 나갔듯이 지금도 주님은 우리의 신앙을 완성해 나가도록 격려하고 계신다. 느헤미야의 격려로 예루살렘 성의 재건이 이루어졌듯이 우리의 신앙도 주님의 도우심으로 완성될 것을 믿어 의심치 말고 나아가자.

(4: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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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내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좇아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다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기계를 잡았었느니라

 

이스라엘 중에 가진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사서 자신의 소유물로 삼고 없는 자들의 그 없는 것조차 빼앗아 자신들의 소유로 삼았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의 어리석은 모습들이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나의 유익과 나의 즐거움을 위해 내게 허락된 소유물을 사용한다면 그것이 이스라엘의 그 어리석은 자들과 같은 것이 된다. 느헤미야는 이 잘못된 것을 꾸짖어 바로잡는다. 주님이 우리에게도 이 같이 하라고 이 말씀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과연 이스라엘의 그 어리석은 자들은 느헤미야의 말에 순종하고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이것이 순종하는 믿음이다. 우리도 주님의 이 의도하심대로 우리의 믿음을 바로 잡아야 한다.

(5:1) 때에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 형제 유다 사람을 원망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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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내가 옷자락을 떨치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떨치실지니 저는 곧 이렇게 떨쳐져 빌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모든 백성이 신뢰하며 따르는 그 날, 느헤미야는 그 땅의 총독이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있었던 그는 어쩌면 가장 큰 유혹을 당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백성이 존경하며 따르지, 너는 가장 위대한 총독이야, 너의 위대함을 뽐내보렴, 하는 유혹이 그에게 다가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는고로 사단은 결코 그를 넘어뜨리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더 겸손하였고 그 백성들의 고난을 생각하여 그 백성들로부터 거둬들일 자신의 녹봉도 받지 않았다. 오직 고난당하는 그 백성들만 생각했다.

이는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그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몫을 챙기셨던가. 오히려 주린 자들을 먹이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시되 자신은 채찍에 맞아 깊은 상처를 입으신 하나님이 아니셨던가. 자신의 유익을 전혀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한 이 순전하고 아름다운 신앙을 우리로 하여금 닮으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성화로 이끄는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5:14)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을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이십 년부터 삼십이 년까지 십이 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가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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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9)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여져가는 그 때에는 더욱더 사단의 방해가 집요하여지게 된다. 이제 성벽공사가 마무리 되려고 하는 쯤에 도비야와 산발랏은 제사장과 선지자까지 매수하여 방해한다. 느헤미야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를 쉬지 않은 고로 하나님이 그에게 지혜를 주사 그 술책들을 깨달아 알게 함으로써 넘어가지 않게 하셨다. 우리로 하여금 깨어있어 하나님께 부지런히 기도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6: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대적이 내가 성을 건축하여 그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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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성벽이 완성되었다. 이는 믿음의 틀이 완성됨을 의미한다. 우리의 신앙에도 이와 같은 틀이 있고 그 안에 채워질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 내가 믿음으로만 살기로 결심하는데서 부터 경주하는 그 노력이 어쩌면 이 성벽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진실로 그 마음에 하나님을 모셔두는 것이다. 이것에는 조금도 흠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성이 완성된 후에 점검하여보니 신분을 알 수 없는 자가 제사장직에 있었다. 제사장직은 아론의 후손만이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정하신 것인데, 이 원칙을 어기고 있었던 것이다. 느헤미야는 과감히 이들을 제거해 내었다. 우리도 마음속에 하나님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있다면 느헤미야처럼 과감히 속아내는 믿음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

(7:61)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돈과 임멜로부터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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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5) 방백이 저희에게 명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성벽을 완성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할 만한 심령을 허락하셨다. 그들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던 그 때에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리기를 거부했다. 그들의 원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곳으로 그들은 끌려갔다. 이제 회복된 심령으로 듣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은혜로웠을까. 그들은 모두 흐느껴 울었다. 학사 에스라가 부흥사처럼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만한 웅변력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모세의 율법책을 낭독했을 뿐이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로 다짐한 믿음의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이것이다. 단지 말씀을 들음으로써 그들의 마음에는 뜨거운 감사가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이 같은 선물을 내게도 주옵소서라고.

(8:1) 이스라엘 자손이 그 본성에 거하였더니 칠월에 이르러는 모든 백성이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기를 청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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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뜨거운 회개의 눈물을 쏟는 그들을 향해 느헤미야는 그들을 위로한다. 울지 말라고. 오늘은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그리고 그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격려한다. 이는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선물이다. 이제는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은혜의 선물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진실한 믿음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이 이 같은 것이다.

(9:22, 개역) 이 달 이 날에 유다인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15:11, 개역)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16:20, 개역)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16:24, 개역)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2:28, 개역)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고후 7:4, 개역) 내가 너희를 향하여 하는 말이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4:1, 개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딤후 1:4, 개역)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요일 1:4, 개역)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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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회 무리가 다 초막을 짓고 그 안에 거하니 눈의 아들 여호수아 때로부터 그 날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이같이 행함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즐거워하며

(8:18)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 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팔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느니라

 

이스라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저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통해 그들의 눈에서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들의 선조들이 깨달아 듣지 못한 말씀의 깨달아 들음이 그들에게 임한 것이다.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순종한 그들에게 벷푸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셨다. 우리도 이 같은 은혜를 사모하는 믿음을 갖자.

(9:1) 그 달 이십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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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8)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하였느니라

 

느헤미야를 통해 인친 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이름이 기록된 연유는 무억인가. 이는 그 선택하신 자들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시고 결단코 그 이름을 흐리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에게 친히 증거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이 알 수 없는 자들을 하나님은 다 아신다. 그리고 끝까지 그들을 버리지 않으실 것을 증명하시는 것이다. 이 성경이 기록된 후로 적어도 2500년이 흘렀음에도 그들의 이름은 전혀 흐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3:5, 개역)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10:1) 그 인친 자는 하가랴의 아들 방백 느헤미야와 시드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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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7) 말룩, 하림, 바아나이었느니라

 

신앙의 회복은 생활 속에서 그 실천으로 드러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이다. 이제 새롭게 결단한 이스라엘은 그 삶에서도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온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그들은 온전히 변하였다. 가나안 땅에 처음 들어간 그들의 선조들의 그 모습과 같이 그들은 새롭게 거듭났다. 이제 이 모습처럼 새롭게 결단한 우리도 삶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2:26, 개역)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10:28) 그 남은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및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와 그 아내와 그 자녀들 무릇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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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9) 곧 이스라엘 자손과 레위 자손이 거제로 드린바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가져다가 성소의 기명을 두는 골방 곧 섬기는 제사장들과 및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있는 골방에 둘 것이라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성벽을 52일 만에 중건했다. 주님도 우리로 하여금 신앙을 회복케 하신다. 이제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했듯이 우리도 주님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완전히 재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