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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밧 과부의 가루통

영동장로교회 2017. 1. 15. 12:34

https://drive.google.com/file/d/0B1aVWZqG1JW8SEtIWk5vTURyYzA/view?usp=sharing


사렛다 과부의 가루통

 

엘리야를 통해 사렛다 과부의 가루통을 채워주시고 그 아들을 살리신 하나님. 이는 하나님이 그 선택하신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구원하여 살리실 것이라는 약속을 증거해 보이신 것이다. 엘리야 역시 먹을 것이 없는, 정말로 아무 대책이 없는 형편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런 엘리야를 하나님이 친히 먹을 것을 해결해 주셨다. 까마귀와 한 과부를 통해 그 일을 친히 행하셨다. 엘리야가 먹는 문제를 고민했다면 그가 온전히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한 과부의 가족을 굶어죽음에서 건져낼 수 있었을까.

(왕상 17: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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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7: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왕상 17: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줄 아노라 하니라

 

 

그 과부는 자신의 외아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한 줌 남은 그 곡식 가루로 떡을 해서 먹고 죽을 작정이었다. 이 장면은 사람으로서 가장 비참한 순간을 연출해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 혼자 굶주려서 죽을 형편이면 그래도 덜 비참할 수 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외아들과 함께 죽을 작정이었다.

 

외아들이란 여인에게서는 자신의 목숨보다 귀한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외아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그 여인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를 상징한다. 사르밧과부가 엘리야를 만나기 전의 이 모습이 주님을 만나지 못한 이전의 우리 모습을 의미한다. 주님을 만나지 못한 이전의 우리는 이처럼 죽을 처지에 놓인 자들이었다. 그 여인에게 엘리야가 찾아 온 것은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것을 상징한다.

 

엘리야가 찾아와 먹을 것을 구한 것은 그 여인에게 가장 귀한 것, 이제 마지막 죽기 직전에 자신 들이 먹을 것, 바로 그 떡 한 덩어리인 것이다. 누구라도 그 떡을 남에게 주는 것이 쉬운 일일까. 택함을 입은 자의 가장 귀한 모습이 이것이다. 자신에게 가장 귀한 것으로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그 마음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다.

 

주님이 심판하시는 그날 이렇게 하셨다.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르겠다할 때 그들은 주여 내가 주의 이름으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였나이다한 그들에게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한 것이고, 아무 것도 주님에게 드리지 못했다고 한 자에게는 네가 네 이웃에게 베푼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칭찬하시고 그들은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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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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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사렛다 과부가 엘리야에게 베푼 그 정성은 곧 하나님께 드린 정성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셨고, 그녀는 굶어 죽음을 면하는 은혜를 받아 누렸다. 그녀의 가루통을 채운 것은 엘리야가 능력을 베푼 것이 아니다. 온전한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 백성을 결코 굶겨죽이시지 않으신다. 광야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어 장사되었던 것은 그들이 먹을 것이 먹는 광야에서 굶어죽은 것이 아니다.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그들이 스스로 죽음을 향해 간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셔서 굶어죽음을 면할 수 있게 하셨던 것이다.

(16:2)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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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제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주님을 따라다녔던 그 오천명, 그들이 며칠을 따라다녔지만 그들은 결코 굶지 않았다. 그들에게 먹을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없었다. 그런 그들이 굶지 않은 것은 오직 하나님이신 예수의 은혜로 먹는 문제가 해결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그 택하신 백성을 이 땅에서 굶어죽게 하시지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에게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감당하는 날까지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해주신다.

(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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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15: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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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8) 먹은 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들판에 있는 풀들 초차 돌보시는 하나님이 너희를 돌보지 않겠느냐하신 주님의 그 말씀을 믿어 의심치 말라.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중략---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