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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에 관하여(2)

영동장로교회 2025. 3. 30. 09:05

2025. 3. 30.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사도 바울의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의 의미에 관하여(2)“

 

 

그러면 왜 사도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했을까?

 

사도 바울이 이 말을 한 그 대상은 분명히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염려하지 말라고 권면한 것은 그냥 단순한 위로나 베풀고자 하는 권면이 아니었다. 그들이 염려한 것은 바울의 투옥, 경제적 어려움, 교회 내부 갈등(에우디아와 순두게 문제) 등이었지만, 대체적으로 사도 바울의 복음 전하는 사역과 관계되는 그 일과 관련된 것임에는 분명했다.

(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빌 1: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 1:30)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빌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빌 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 것을 요청하며(빌 1:27),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빌 1:28),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것이 은혜라고 말한 바가 있다(빌 1:29). 이는 단순한 고난의 수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이루어가시는 복음 사역의 과정 속에 성도들이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말이었다.

(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빌 1: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 1:30)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참으로 그러했으니, 그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십시일반으로 헌금하여 선교비를 마련하였고, 그것으로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을 도와왔다. 그래서 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염려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복음 전하는 그 일과 관계되었을 것임에는 분명하다.

(빌 1:5)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빌 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 1: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빌 4: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복음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복음 전하는 일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그 일이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 전파는 단순한 인간의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시고 반드시 성취하실 일이다. 하나님은 분명히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절대자이시다. 그런고로 그는 원하시는 바를 누구의 간섭없이 자의적으로 이루실 수 있으신 자이시다.

(사 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그리고 그는 분명히 인격적이시기에 사랑을 그 속성으로 하고 계심은 부인할 수 없다. 전능하시기에 그 사랑 또한 무한하시다. 사랑이 무한하신 자가 당신이 직접 만드신 이 세상을 죄로 오염된 상태 그대로 버려두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 된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세상은 분명히 그가 지으셨고, 그 지으신 것을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음을 성경은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보시기에 좋았다는 것은 사랑스럽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니, 그는 분명히 그 지으신 모든 것을 사랑하셨음에 틀림이 없다.

(창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그런데 그 사랑스런 모든 것이 인간의 죄로 인해 오염되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그것을 그대로 버려두실까?

(롬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 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만약 인간의 죄로 인해 오염된 모든 창조물을 오염된 그대로 버려두신다면, 그는 무정한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그는 진실로 참된 하나님이 되실 수가 없으실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하나님이시다.

 

그런고로 그는 오염된 그 피조 세계를 그대로 버려두실 수가 없으시고, 반드시 회복시키셔야만 한다. 이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그 일이다. 이는 죄로 인해 영영 죽을 자를 구원하는 그 일이며, 이 복음으로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던 그 날에 “우리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고 하신 그때의 그 모습으로 회복되어 가게 된다.

(롬 8: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롬 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일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 중에서 가장 고귀하고 영광스런 일이 된다. 그러니 이 일이 어찌 이루어지지 아니하겠는가! 이 사실에 대해 사도 바울은 너무나도 분명히 깨달은 사도였기에 그렇게 힘주어 말한 것이다. 아무 염려도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아뢰라고.

 

복음 전하는 이 사역을 통해 이 땅이 새롭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이루실 것을 이미 영원에서 작정하셨다. 그러했으니 때가 되매 사도 바울을 통해 그 일을 감당하게 하셨고, 이제는 그 남은 사역을 오늘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맡김이 우리에게 짐이 될 수 있겠는가?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전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후 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일을 맡으면 그것을 부담으로 느낀다. 그래서 보수라는 것이 존재하게 되었다. 그 일이 짐이기에 그 짐을 감당한 대가로 돈을 받음이 이 세상의 방식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복음 전하는 그 일을 감당함은 결코 짐이 되지 아니한다.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나님께서 무한한 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인데, 그 복을 주실 것에 대한 구실을 만드셨으니, 그것이 복음 전하는 그 일을 맡기심이었다. 그러니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 내게 복이며, 특권이 되는 것이 아닌가!

(고후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복음을 전함으로써 이 땅에서는 갱생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된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능히 하실 일이다. 우리를 통해 이 일을 하지 않을지라도 그 일을 이루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능력 없는 우리에게 그 일을 맡기신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지극히 사랑하심이니 어찌하든지 많은 복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려는 그 구실이었을 뿐이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그 일을 할 때, 내 능력으로 하려고 달려들면 그 일은 반드시 실패하고 만다. 왜냐하면 그 일은 하나님이 이루실 일이기에 우리의 능력으로는 결코 이룰 수가 없는 일이다. 주님의 제자 70인이 복음을 전하고 돌아온 일은 그 좋은 예이다. 그들에게서 역사가 일어난 것이 어찌 그들의 능력이었던가!

(눅 10:17)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 10:18)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눅 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눅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생각해보라!

성령 하나님의 중생시키시는 그 은혜의 역사가 복음이 전해진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그 복음을 들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은혜로운 복음을 전한다고 하더라도 영혼이 죄로 인해 죽어있는 상태에 있는 자라면 그가 그 전해진 복음을 들을 수가 있겠는가!

(엡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엡 2: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엡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중생의 역사가 일어나고 그 영혼이 새 창조를 입어야만 비로소 복음을 들을 수가 있게 된다. 그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여 듣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해야 비로소 주님으로부터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칭의’를 입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받는 ‘수양’이 이루어지게 된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그러니 우리가 복음을 전한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어찌 성과를 이루어내겠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그 일도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시는 은혜의 상급이 될 뿐이다.

 

우리는 단지 복음을 전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 살린 그 공로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 주시고, 큰 상급을 받을 근거로 삼아주시는 것이다. 이 같은 사랑의 은혜를 베푸시는 이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대체 얼마나 사랑하시기에 이 같은 은혜를 입혀주시는 것일까!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이 비밀을 사도 바울은 능히 깨달아 알았기에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에는 믿음의 백성이 이 귀한 사역을 감당하기로 결심함에 따르는 모든 문제가 다 포함된다. 그래서 바울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한 것은 단순한 낙관주의나 현실 부정이 아니었다.

 

이 염려의 대상에는 심지어 세상 사람들이 세상적인 욕심으로 구했던 그 물질적인 것도 포함되었다. 복음 전하는 그 사역을 감당하는 일에 어찌 세상의 돈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 세상을 살며 이 세상의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반드시 돈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사도 바울도 복음 전하는 그 일에 이 돈이 필요했으니,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그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선교비를 마련했다. 만약 복음 전하는 그 일을 할 때 이 돈을 모으는 일이 필요하다면 그것조차도 사도 바울은 염려하지 말라 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이니 어련히 하나님께서 준비해주시지 않겠는가!

(빌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그러나 여기서 명심할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자금을 만들어 주실 것이라 하고 우리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는 것은 “우리가 복음 전하는 그 일을 할 터이니, 하나님 당신은 그 일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어라“라고 하는 꼴이 된다.

 

이는 내가 상전이 되어 하나님을 종으로 부리는 꼴이니, 이같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며, 망령되게 하는 일이 또 있겠는가!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사명자다. 사명자라면 그 사명을 맡긴 주인의 뜻을 살피고 모든 일을 주인의 뜻대로 내가 직접 해야 한다.

(약 2: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약 2: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고후 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할 때 하나님은 이미 그 일을 다 이루시고 우리가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하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시며 이미 준비하신 그 상급을 베푸신다. 여기서 또 조심할 일은 하나님께서 상급을 이미 준비하시고 우리를 기다린다고 해서 벌써부터 그 상급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한 일을 함에서 따르는 상 받을 자의 참됨이란 그 상을 전제하지 않은 그 마음에 있다. 처음부터 상 받을 생각으로 선한 일을 한다면 그 선이 참된 선이며, 그 상 받음이 참이 될까?

(마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마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고전 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히 6:10)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결국 바울이 말하는 염려하지 말라는 권면은 단순히 인간적인 염려를 넘어서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신뢰와 순종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사도 바울이 "염려하지 말라"고 권면한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복음 전파의 사역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는 메시지였다.

 

이 권면은 단순한 염려 해소나 현실 부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음의 사역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삶의 방식이다. 그러하니 사도 바울은 염려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당부하고 있다.

 

하나님께 감사함은 이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자리에 세우시는 그 특권을 우리에게 주심 그것에 대한 감사함이고, 이 사역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이니 그 이루어주심에 대한 감사함이며, 이 과정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예비하시고 그것을 주심에 대한 그 감사함이었다. 이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그 감사였다.

(시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시 37: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시 37: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롬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롬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능력과 주권을 믿고 염려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은 우리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임을 고백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일을 맡아 그분의 계획에 순종하며 살아가야 한다. 참으로 그렇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