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잃어버린 해에 관하여
2024. 6. 23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예수의 잃어버린 해에 관하여”
성경에서 예수의 어린 시절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기간에 대한 기록은 매우 제한적이다. 이 시기를 ‘잃어버린 해’, ‘침묵의 해’, 또는 '숨겨진 해’라고 칭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예수에 대한 구체적인 사건이나 활동에 관한 성경적 기록은 없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의 탄생과 초기 어린 시절에 대한 몇몇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12세 때 성전에서 유대인 학자들과 사흘 동안 대화하는 장면 이후로는 약 18년간의 기록이 없다. 이 시기는 예수의 삶에서 알려진 바가 없기에 많은 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추측과 가설을 세우기도 했다.
(눅 2:41)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눅 2:42)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눅 2: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눅 2: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눅 2: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눅 2: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눅 2: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눅 2:48)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눅 2:49)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눅 2:50)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눅 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눅 2: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12살 때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학자들과 사흘 동안 대화를 나눈 후에 공생애 사역을 시작한 삼십 세가 되는 그날까지의 18년간의 행적에 대해서는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
(눅 3: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심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눅 3:24)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얀나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눅 3:34) 그 이상은 야곱이요 그 이상은 이삭이요 그 이상은 아브라함이요 그 이상은 데라요 그 이상은 나홀이요
(눅 3:38)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예수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기에 이 18년 기간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기간에 예수가 인도로 가서 불교 철학을 배웠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왜 성경은 이 기간에 대한 예수의 기록에 침묵하고 있을까?
성경의 기록은 우리의 구원에 관한 것을 대주제로 하여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예수에 대한 기록도 우리를 구원하여 살리시는 그 일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를 구원하여 살리실 그 사역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세세히 기록한다면 요한의 말대로 그 책의 양은 태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을 것이다.
(요 21:25)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핵심 내용만을 추린 것이 바로 성경의 그 기록이다. 그래서 예수의 전 생애에 대한 기록을 세세히 언급하는 대신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그 기록만을 남긴 것이다.
예수의 탄생에 대한 기록이 빠질 수 없는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실 그 메시야가 예수라는 것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구약에 예언된 그 메시야가 바로 예수라고 하는 그것에 대한 증명이 바로 예수의 탄생에 대한 그 이야기이다.
구약 이사야서에서 이사야가 메시야는 처녀에게서 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므로 처녀인 마리아에 대한 소개와 그녀가 처녀로서 잉태하게 된 그 이야기의 기록은 성경의 기록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래서 누가는 그가 기록한 누가복음에서 1장과 2장에 걸쳐서 예수의 탄생과 관련한 그 이야기를 아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마태 역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 아기가 예수라는 것을 증언하려고 그의 복음서에 이사야가 예언하여 말한 ‘임마누엘’이라는 그 단어를 명확히 언급하여 기록했다.
(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 1: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마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으나
(마 1: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구약에서 미가 선지자는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은 미가 선지자의 그 예언에 따른 결과이므로 예수의 탄생지에 대한 이 기록은 구속사의 관점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마태는 선지자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 즉 메시야가 태어난다고 예언했다는 사실을 인용하여 기록하고 있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마 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마 2: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마 2: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마 2: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마 2:5)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마 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예수는 메시야, 즉 구원자이시다. 그렇다면 그가 구원자가 되셔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시조 아담이 하나님과 맺은 행위 언약을 어김으로써 하나님 앞에 죄인 된 자의 자리에 섰다. 그때 이미 우리는 그의 허리에 있었기에 그 죄에 동참한 자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죄 중에서 태어난 자이다. 이런 신분으로 태어난 자가 과연 행복하다 할 수 있겠는가!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과 함께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담의 그 죄를 유전 받은 자이기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그래서 하나님과 더불어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그 일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애초부터 가장 불행한 자였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하나님은 그 본질이 사랑이시다. 그러하기에 우리를 그 불행한 자의 자리에 영원히 버려두시는 그 일은 하나님의 속성에 부합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와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일, 즉 우리를 죄에서 해방 시키는 그 일을 하셔야만 한다.
이 일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 구약에서 죄인이 죄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요구되었다. 죄인 된 자는 자신의 죄를 대신할 희생의 제물을 드려야만 했다.
죄인은 그 죄로 이미 부정하게 되었기에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다. 하나님은 의의 근원이시니 의롭지 못한 존재와 대면하실 수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서는 죄인 된 자가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었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말씀하실 때 드러났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나를 본 자는 살 수가 없다”라고 하시면서 당신의 손으로 모세의 눈을 가려주셔서 그가 죽음을 면하게 했다. 아무리 위대한 모세라도 사람이기에 죄인인 것은 마찬가지이니 그도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가 죽음을 면했다.
(출 33: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 33:2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출 33:22)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출 33: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사사기에 소개된 기드온도 그랬다. 사사인 그도 사람이기에 죄인임은 매일반이었다.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했을 때 “이제는 내가 죽게 되었구나”하고 탄식했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고로 그가 죽음을 면했다.
(삿 6:20)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삿 6:21)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삿 6:22)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삿 6: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지만 죄인이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는 그 일은 직접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흠 없는 어린 양을 제물로 삼아 자신의 죄를 전가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 이 제사 방식은 죄인인 사람이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것이었다. 죄인된 이스라엘을 살리시려고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애를 쓰셨다. 그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게까지 애를 쓰셨을까!
구약의 그 제사는 모형이었다. 구약의 이 희생제물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고 이 땅에 오실 메시야에 대한 그 그림자였다. 우리 중에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는 없다. 더더욱 모두 하나같이 죄인이기에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중보자로 서는 그 일을 할 수도 없다.
흠 없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해시킬 수 있는 제물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담의 죄로 인해 모두가 죄인이 되었으니 남자의 자손으로서는 아무도 중보자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중보자가 되기 위해서는 남자와 관계를 갖지 않은 동정녀에게서 난 자만이 메시야가 될 자격이 있다.
그러하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예언하였고, 그 예언대로 예수가 마리아에게서 났다.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누가는 누가 복음의 1장과 2장의 두 장에 걸쳐서 세밀히 기록했던 것이었다.
이미 구약에서 모세의 탄생과 그가 당한 시련에서 예수의 오실 것과 그가 당할 시련이 암시되고 있었다. 모세가 태어났을 때 바로에 의해 죽임을 당할 처지에 있었음은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할 그 위기를 예표하고 있었음이었다.
모세가 광야에서 시련을 당한 것도 주님이 광야에서 40일간 시험을 당하실 그것을 그림자처럼 보여줌이었다. 이로써 모세가 예언한 선지자는 바로 그 예수임이 증명되었다.
(신 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아담이 지은 그 죄를 사함받기 위해 드려질 그 제물 되실 자는 범죄 이전의 아담과 같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의 인성은 죄를 짓기 전의 아담과 동일해야 한다. 만약에 예수가 우리의 죄를 대신할 희생의 제물로서 역할을 감당할 그 조건을 갖추어가는 그 일에서 그가 지닌 신성을 이용한다면 그는 대속물로서의 자격을 잃게 된다.
죄를 범한 아담은 사람으로서 그 죄를 지음이었다. 그 죄는 완전한 불순종에 의한 죄를 지음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죄 사함을 구하는 그 일을 함에서는 그 선행 작업으로 완전한 순종을 이루어야만 한다. 이는 완전히 사람으로서만 이루어야 하는 일이기에 이 일에서는 그이 신성이 전혀 작동되게 해서는 안 된다.
아담이 범죄 한 그 순간에 그는 미숙한 육신 상태가 아니었다. 육신이 온전히 성숙한 성년이었다. 그래서 예수도 말구유에서부터 그의 육신이 완전히 성숙 될 그때까지 제물이 되기 위한 그 준비를 순차적으로 해 나가야만 했다.
그가 서른이 된 그때가 대속물로서의 자격을 갖춘 그 순간이었다. 그 순간에 도달했을 때 그는 비로소 하나님 앞에 자신의 순종을 완성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할 그 자격을 얻었다.
그가 광야에서 사단의 시험을 이겨낸 것은 아담이 이루지 못한 그 순종을 드디어 완성해 이루어냄이었다. 이로써 예수는 우리의 죄에 대한 대속물로서의 자격을 완성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의 광야 40일의 그 수난은 우리의 구속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점유하기에 그 기록은 빠질 수가 없다. 그래서 마태와 마가와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 이 사건을 모두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마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막 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막 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눅 4: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눅 4: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예수는 우리를 위한 대속물이 되셔야 하기에 그의 인성은 처음부터 순종을 이루어 감으로써 그 자격을 온전히 갖추어 나가는 그 일을 해 나갔다. 누가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 학자들과 대화한 사건 이후에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셨고,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고 기록함으로써 그 사실에 대해 증언했다.
예수는 대속물로서의 자격뿐만 아니라 그 죄를 청산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을 갖춘 자가 되어야 한다. 메시야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자이시다. 죄에서 구원한다는 것은 죄가 없다고 선언해줄 줌이니, 메시야는 이러한 권한을 지닌 자여야 한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롬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죄인을 향해 죄 없다고 선언해줄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님뿐이다. 따라서 메시야는 반드시 하나님이셔야만 한다. 하나님이셔야만 하는 메시야 예수는 하나님으로서 지니시는 그 신성도 지니셔야만 한다.
이 사실에 대해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시니라.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지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그의 복음서에 기록함으로써 이를 증거했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또 이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말함으로써 이를 강조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