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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고레스에 관한 예언을 성취시키신 하나님의 뜻은

영동장로교회 2022. 5. 8. 09:43

2022. 5. 8.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역사를 통해 고레스에 관한 예언을 성취시키신 하나님의 뜻은?“

 

구약 에스라서는 시작을 이렇게 하고 있다.

(라 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라 1: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라 1: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에스라서는 이렇게 마치 세계사의 한 장면을 묘사하듯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하나님은 에스라서를 왜 이렇게 기록하게 했을까?

 

사람은 통상적으로 어떤 사실에 대해 평가할 때 자신이 경험한 한도 내에서 판단한다. 그런 사실에 대해 자신의 경험에서 그와 같거나 유사한 경험이 있었다면 그 사실을 긍정한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 한도 내에서 그러한 사실을 경험한 바가 없다면 그 사실을 대체적으로 부정한다.

 

성경에 기록된 신앙과 관계된 사건들에 관해서도 그러하다. 성경에 기록된 이 일들은 인간의 경험을 초월하는 일들이 다수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이 사건들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부정한다. 자신의 경험상으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항상 정하신 바를 거짓 없이 행하신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은 항상 참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러하지 못하다. 고의적으로 거짓을 서슴없이 행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사실에 대해 선뜻 긍정적으로 수용하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이 어떤 사실에 대해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하는 그 이유는 어디에서 기원하였을까?

 

사람의 시조인 아담의 아내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탐하는 그 욕망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고 그것을 따 먹었다.

(창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창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 때 하와는 자신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그 계명을 어겼다는 사실을 능히 인식했을 것이다. 자신이 죄를 범했다는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그녀는 그 책임을 혼자 떠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아담도 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만듦으로써 공범이 되게 하였다. 그 죄를 함께 공유함으로써 그 책임을 나누어 경감하고 싶은 그 욕심을 또 품었던 것이다. 자신도 미처 깨닫기 전에 함께 공범이 되어버린 아담의 입장에서는 또다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쉽게 그것을 받아들여 수용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의심하는 습관이 생겼을 것이다. 이 습관은 그의 모든 후손들에게 유전되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사실에 대해 의심하여 쉽게 수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의 본능적인 이러한 태도를 하나님은 능히 아셨을 것이다. 그러하셨기에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모든 일에 대해 사람들이 쉽게 수용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을 고려하시어 하나님은 한 가지 방안을 내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정하신 모든 사실들은 우리가 그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 믿음으로 수용하여야만 한다. 그리하여야만 우리의 구원이 완성된다. 이처럼 중요한 일을 우리가 쉽게 긍정적으로 수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아시기에 역사 속에서 어떤 사실에 대해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시고 시간이 흐른 후에 그 사실이 진실로 드러나 밝혀지게 하셨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하신 모든 일들이 참된 사실임을 우리로 하여금 믿고 받아들여 신앙할 수 있도록 하셨다. 그리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이 성공적으로 완성되는 그 길이 열린 것이다. 그렇게 하시려고 에스라서의 시작에 역사속의 인물인 고레스를 등장시키셨다.

 

고레스의 출현에 관해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150년 전에 예언하였다.

(사 44:24)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사 44:25) 거짓말 하는 자의 징조를 폐하며 점 치는 자를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 지식을 어리석게 하며

(사 44:26) 내 종의 말을 응하게 하며 내 사자의 모략을 성취하게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거기 사람이 살리라 하며 유다 성읍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될 것이라 내가 그 황폐한 곳들을 복구시키리라 하며

(사 44:27)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하며

(사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 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자신을 구속자라고 밝히고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하나님이 누구시냐! 우리가 다시 살줄을 어떻게 아느냐? 죽어서 구원받는 것을 경험하여 증명한 사람이 있느냐!“라고 하면서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쩌면 믿는 믿음의 백성들이라고 하는 자들 중에서도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사두개인들은 분명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스스로 말하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죽은 자가 부활하는 일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현재의 삶만이 의미가 있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하는 그릇된 믿음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마 22: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구속자라고 밝히심으로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함을 분명히 하셨다. 이 사실에 대해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 쉽게 수용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하나님은 멸망당할 그 예루살렘이 고레스 왕에 의해 회복될 것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셨다. 고레스 왕이 이 사실을 알게 되기 150년 전에 이 말씀이 주어졌으니 그 당시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믿을 수 있었을까?

 

아직은 멸망당하지 않은 예루살렘이 회복된다는 이 말에 남쪽 유대 사람들이 귀를 기우렸을까?

그 당시 남쪽 유대는 오직 현재의 그 삶에 도취되어 하나님을 마음 속으로 깊이 찾지 않았다. 그들이 드리는 제사는 늘 형식적이었다.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기원전 722년에 멸망당하였고, 남쪽 유대는 그 앗수르의 위협을 받고 있는 그 당시 상황은 앗수르와 동맹을 맺자는 주장을 하는 무리와 애굽과 동맹을 맺자는 무리로 나뉘어져 있는 혼란기였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이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것이지만 그런 후에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여 버리지 않으셔서 당시에는 그 존재도 없는 고레스라는 왕이 나와서 유대 성읍들을 중건하도록 도울 것이라 했다. 이 주장이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러나 믿음의 눈을 가진 믿음의 백성이라면 이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믿음의 백성이라고 하는 우리도 그 당시에 유대 사람들과 함께 있었더라면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였을까?

 

그래서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이사야 선지자의 이 예언이 참임을 증명하셨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신 이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역사를 통해 증명하셨다. 그리하심은 이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시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이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모든 말씀이 참임을 믿을 수 있게 하시고 궁극적으로는 말씀으로 약속하신 우리의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게 하심이었다. 이는 참으로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기에 어머니가 그 아이에게 세세하게 모든 것을 설명하여 그 아이로 하여금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함과 같이 그렇게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시며 누누이 우리를 구원하시고자하시는 그 참 사랑을 정말로 섬세하게 잘 드러내어 보이신 하나님이신 것을 보이신 것이다.

 

과연 고레스는 이사야의 이 예언을 본 순간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사 45:1)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 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고레스에게 이르기를

(사 45:2) 내가 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케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사 45: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서 너로 너를 지명하여 부른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사 45:4)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사 45: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사 45: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이사야가 이 글을 쓴 시점이 대략 기원전 690년경이었고 고레스가 왕이 되었을 때 이 글을 본 시점이 대략 기원전 538년경이니 적어도 150년의 간격이 생긴다. 자신이 태어나지도 않은 그 때에 자신의 이름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고 자신의 왕이 될 것과 그리고 열국을 제압하여 광대한 제국을 이룰 것에 대해 본 것처럼 그렇게 생생하게 묘사한 것을 보고 어떤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바사 대제국의 왕인 그는 한 때 버림받은 자처럼 살았다. 메대(메디아)인의 왕이며 페르시아인들의 대군주인 아스티아게스가 자기 딸을 페르시스에 있는 자기 신하인 캄비세스라는 군주와 결혼시켰고, 이들 사이에서 고레스(=키루스)가 태어났다.

 

그 아기가 자라서 자기를 멸망시키는 꿈을 꾼 고레스의 외할아버지인 아스티아게스는 고레스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의 수석고문관이 아기를 죽이는 대신 양치기에게 주어 기르게 했다. 10세가 된 고레스(키루스)는 뛰어난 자질 때문에 아스티아게스에게 발각되지만 아스티아게스는 자신의 꿈에 개의하지 않고 주변의 권유를 받아들여 살려주었다.

 

그런 유년시절을 거쳐 드디어 BC 559년 안샨왕이 되었으며, BC 550년에는 외할아버지인 아스티아게스를 쳐서 메대(메디아)를 멸망시켰고, BC 546년에는 리디아의 도읍 사르디스를 함락시켰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연대 즉 BC 538년 갈데아(신바빌로니아)를 멸하고 바사 대제국을 이룬 자신의 이 모든 성장과정을 예언한 이사야의 글을 보았을 때 그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그리고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고 하신 그 말씀에서 자신을 이렇게 제국의 왕으로 만든 자가 바로 이스라엘이 섬기는 그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리하였으니 고레스가 어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드디어 이사야의 그 예언대로 그는 포로된 유다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 명했다. 가서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성전을 재건하라 명하고 그 일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까지 했다.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 것은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들을 회복시키시려고 오실 그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하여 보여주려 하심이었다.

 

아직 멸망당하지도 않은 남쪽 유대에 살던 그 당시 사람들은 고레스에 관한 이 예언을 믿었을까?

아직 역사에도 등장하지 않은 한 인물이 왕이 되고 그래서 그가 멸망당하여 포로로 잡혀간 자신들의 후손들을 해방시켜주어 이 예루살렘을 회복케 한다는 이 예언을 어떻게 쉽게 믿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역사는 흘러 그 예언대로 모든 것이 정확히 이루어졌다. 이 사실을 예수께서 사역하시던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가 참된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언된 대로 오신 그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약에서는 오실 그 메시아에 대하여 끊임없이 예언하여 말하고 있다. 모세는 그의 기록에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하고 있다.

 

우선 자신과 같은 선지자가 오실 것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 예수의 선지자 사역은 그의 삼중직인 참된 왕이시며, 대제사장이시며, 선지자 되신 것 중의 하나였다.

(신 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신 18:16) 이것이 곧 네가 총회의 날에 호렙 산에서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한 것이라 곧 네가 말하기를 나로 다시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매

(신 18: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의 말이 옳도다

(신 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신 18:19) 무릇 그가 내 이름으로 고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신 18:20)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자신의 말을 예수의 입에 두신다는 것은 자신의 독생자로서 자신을 대신하여 모든 것을 집행하실 자가 됨을 의미한다. 이는 곧 성부와 동일한 반열에 있음을 의미하니 성부가 하나님이시니 곧 성자도 하나님 되심을 의미한다.

 

모세가 만든 놋 뱀은 죽을 자를 그 죄에서 살려내는 구속을 이루시는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를 예표한다. 뱀에게 물린 자들이 그 놋뱀을 바라볼 때 다 살았다. 이는 예수의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일을 예표한다. 십자가에 달린 그 예수를 바라볼 때 우리가 구원을 얻는 그 일에 대한 예표이다.

(민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민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또 모세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오실 것을 이미 보았다. 모세가 하나님께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 때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모세 앞에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것은 사람의 형상으로 드러남을 의미했다. 그렇게 이 땅에 등장하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였다. 그래서 예수, 그는 하나님이셨다.

(출 33:18)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출 33: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출 33: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 33:2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출 33:22)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출 33: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다윗에게도 예수의 이 땅에 오실 것에 대한 예언이 다수 존재한다.

예수의 시신이 썩지 않고 부활할 것에 대해 다윗은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라고 예언하였고 그 예언대로 예수는 그 몸이 썩지 않고 삼일 후에 부활하셨다.

(시 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시 16:9)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시 16:10)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시 16: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가룟유다의 배신에 대해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라 하여 예언되고 있다.

(시 41:9)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또한 십자가 위에서 당할 그 조롱도 예언되고 있다.

(시 69:21)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시 69:22) 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시 69:23) 저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시 69:24) 주의 분노를 저희 위에 부으시며 주의 맹렬하신 노로 저희에게 미치게 하소서

(시 69:25) 저희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그 장막에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시 69:26) 대저 저희가 주의 치신 자를 핍박하며 주께서 상케 하신 자의 슬픔을 말하였사오니

(시 69:27) 저희 죄악에 죄악을 더 정하사 주의 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시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시 69:29)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유대인들이 조롱할 것도 이미 다윗에 의해 예언되었다.

(시 22:7)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시 22:8)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걸 하나이다

 

또한 십자가 아래에서 옷을 나누는 예언과

(시 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예수께서 옆구리에 창이 찔리실 것과

(시 22: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예수의 뼈가 꺾이지 않을 것에 대한 예언이 다윗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시 22: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예수의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실 것과

(시 110:1)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심판의 주로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이 다윗에 의해 예언되었다.

(시 119:119)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 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를 사랑하나이다

(시 119:120)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판단을 두려워하나이다

 

이 외에도 예수에 대한 예언은 구약 전체에 널리 분포되어 있어 차고 넘친다.

 

 

예수께서 사역하시던 그 당시의 이스라엘은 믿음의 눈이 모두 장님이었다.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아가 이 땅에 오리라는 것을 말씀하신 하나님의 그 예언대로 메시아이신 성자 하나님 예수가 이 땅에 왔으나 그 예언을 수도 없이 들은 이스라엘은 그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 일 또한 역사적인 사실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그 당시의 그 이스라엘 사람들을 비웃을 것이다. 어찌 그리 어리석은 믿음의 백성들이었느냐고. 그렇지만 우리 역시 그들과 같은 어리석은 믿음의 백성들일지도 모른다. 주 예수께서 종말에 관해 분명히 예언의 말씀을 주셨는데 우리는 그 말씀들을 쉽게 수긍하지 못한다.

 

이 땅은 분명히 마지막을 맞이할 때가 오게 될 것이고 그 때 예수께서 심판주로 다시 오셔서 최후의 심판을 행하시고 창세전부터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복을 누리는 자리에 설 것이라고 하셨다.

(계 19: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계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계 19: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계 19: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계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계 19: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계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계 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계 19: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계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계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계 20: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계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계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믿음의 백성들은 이 최종 심판이 임할 그 날을 예비하는 삶을 살라고 명하셨다. 예수와 함께 최종심판의 날에 대한 예언을 한 선지자들과 주 예수의 제자 요한이 이르신 말세에 관한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세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하는 우리들이 여전히 세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어찌 주 예수의 그 말세에 관한 말씀을 믿는다 할 수 있을까?

(마 28: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요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딤후 3: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딤후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딤후 3: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세상의 끝 날을 알고 준비하는 믿음의 백성들의 가장 모범이 되는 자세는 곧 이웃 사랑이다. 주 예수께서 주신 이웃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원수조차도 사랑하라는 그 명령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원수조차 사랑해야하는 믿음의 백성된 자가 자신만이 이 땅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고자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믿음의 백성된 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다.

(마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예수께서 가르친 그 모든 교훈들은 모두 이 모범된 믿음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할 바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그런데 믿는 자라고 하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자들의 삶 속에서는 여전히 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그들이 예수께서 가르치신 이 교훈들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이 없음과 그 깨달음에 따른 행함의 믿음이 있지 않음에 대한 증거일 것이다.

 

역사를 통해 예언하신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짐을 통해 그렇게도 부지런히 증거하신 하나님의 그 뜻을 어찌 깨닫지 못할까!

 

하나님은 이 순간에도 “내가 너를 이토록 사랑하여 애를 쓰는 것은 네가 없이는 내가 못살 것 같아서이다!“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속히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와 그의 뜻대로 살라고 부탁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이 처절한 외침은 이미 구약의 그 많은 선지자들의 외침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 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사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렘 3: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 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렘 3:22)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렘 31:21) 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호 11:7) 내 백성이 결심하고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저희를 불러 위에 계신 자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호 14:1)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

(욜 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슥 1:3)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슥 1:4)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않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 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하나님의 이 절절한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