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믿음을 위한 바울의 권면
2021. 12. 12. 영동장로교회 최규만목사
“참된 믿음을 위한 바울의 권면”
올바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자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 바른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는 일이다.
이미 하나님은 당신의 택하신 족속들인 유대인로 하여금 믿음의 생활을 하게 하셨다. 그들의 그 믿음을 유대교라고 칭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자신들의 생각이 투영된 그런 믿음을 만들어 내었다. 그 일은 하나님을 지극히 오해한 잘못된 믿음이었다.
불가불 하나님은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나타난 그 믿음을 바르게 교정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야만했다. 당신의 온전하신 뜻을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고 오신 그 하나님을 우리는 예수라고 부른다.
예수의 이 땅에 오심과 그 가르침은 새로운 신앙의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유대교와 다른 이것을 기독교라 칭하게 되었다. 그렇게 기독교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무엇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이처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신앙에 있어서 바른 인식을 갖는다는 것은 그 신앙의 생명과 직결된다. 잘못된 인식은 그 신앙을 죽은 신앙으로 만들고 바른 인식은 그 신앙을 살아있는 신앙으로 결과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그 지식에서는 소홀했다. 하나님의 뜻은 택하신 그 족속 이스라엘을 지극히 사랑하시고자하는데 있었다. 그런고로 그 족속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뢰하고 사랑하는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만했다. 이는 그 이스라엘의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이었던 모세는 이 사실을 그들에게 분명히 가르쳤다. 이 사실을 분명히 지식하는 것은 그들을 참되게 살리는 일이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모세는 깨달아 알았기에 그 백성들을 살리기를 간절히 원하는 그 마음을 담아 그렇게 가르친 것이었다.
(출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신 11:13)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신 11:14)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비, 늦은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신 11:15)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그러나 그 백성들은 그 사실을 지식하는 일에 무지했다. 그 결과는 그들의 삶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사기 시대에 드보라가 사사로 있었던 그 때, 전쟁 이후 드보라가 살았던 그 기간 동안에는 그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 이후의 세대에서의 이스라엘에게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세월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되었다.
(삿 5:31)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하나님을 아는 그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는 결국에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일로 결과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을 하나님은 그대로 보고 계실 수 있으셨을까?
그렇다고 하면 그는 사랑의 하나님이 되실 수가 없으시다.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시면 그는 하나님이 되실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을 분명하게 다시 알리실 수밖에 없으시기에 이전에 모세를 통해 자신을 알리시는 간접적인 방법 대신에 직접적으로 당신을 알리시는 그 길을 여셨다. 예수의 이 땅에 오심이 그 일이었으니 그는 분명 하나님 본체의 형상이셨다.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그 뜻을 분명히 깨달은 사도였다. 그런 그였기에 골로새 교인들로 하여금 바르게 지식하도록 가르치는 일에 진심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골로새 교인들은 하나님을 아는 일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입장에 있는 자들이었다.
이때가 서기 60년경이었기에 그들의 신앙은 초보 수준이었다. 이 시기는 아직 기독교 교리가 제대로 체계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예수가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인식도 미흡했다. 그는 하나님이시므로 사람의 몸을 입는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하는 가현설을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의 초기 형태가 활개를 치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이 사실은 요한에 의한 그의 기록인 요한일서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요일 4: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요일 4: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이들이 골로새 교회에게도 세력을 미치고 있었기에 바울은 이를 경계하여 골로새 교회에게 당부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바른 신앙이란 바른 믿음에 근거하고 바른 믿음이란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에 터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바른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곧 구원에 직결되는 일이다.
따라서 바르게 지식하지 못하면 그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일에 실패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이 사실을 아는 바울에게 있어서 골로새 교인들의 신앙적 지식이 바르게 형성되지 못하는 그 일이 지극히 염려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따라서 그는 이 편지, 골로새서를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일은 단지 그 당시의 골로새 교인들에게만 한정된 일이 아니다. 오늘날 이 땅의 많은 성도들에게도 해당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와 같이 세심하게 골로새 교인들에게 바른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가르친 것처럼 그렇게 성도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 당시에 많은 이단적 사상이 교회에 침투한 것처럼 지금도 많은 이단들의 사상이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도들을 지켜내어 바른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교회의 중차대한 사명이다.
바울이 골로새서를 기록한 당시에 골로새교회에 침투한 이단적 요소들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첫째는 유대교의 의식주의이다. 유대교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바르게 인식하는 대신에 사람의 유전이 더 크게 작용하는 과오를 범했다.
그래서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켜내는 일에 우선했다. 할례를 무엇보다 중시한 그들은 할례를 행하게 하신 하나님의 그 참뜻을 왜곡했던 것이다. 할례를 행함은 그 땅의 다른 족속들과의 구별이니 이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됨을 의미하는 일이었다. 할례의 이 구별이 궁극적으로 결과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일이었고 그 결국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일을 결과하는데 있었다.
(신 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그러나 그 이스라엘은 그 할례의 참 뜻과는 다르게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그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골로새 교인들에게 유대인들의 그 전통이 소개되었을 것이고 그들은 그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그 할례와 예수를 통한 그 가르침 사이에 분명한 구분을 내리기에는 지식이 부족하였을 것이다. 이점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가르침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바르게 지식하게 하였다.
(골 2: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골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는 육적 몸을 벗는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이 육적 몸이란 아담의 그 죄를 유전으로 받은 그 몸을 가리킴이니, 이 몸은 그 원죄의 성질에 따라 세상을 탐하게 되어 있고, 불의와 미움과 증오를 담고 있는 그릇과 같다.
따라서 이 몸은 결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담을 수가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 몸을 벗어버리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원죄를 지닌 육신을 벗어버리는 그 일을 거듭남, 즉 ‘중생’이라 한다. 할례의 진정한 목적은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할례의 그 목적이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교회는 이와 같은 구원에 유익하지 못한 유전을 고수해서는 안된다. 그 몸을 벗어버림이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는 일이었다. 죽을 때 비로소 다시 사는 역사가 일어난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시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우리는 분명히 중생한 자들이다. 중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일이다. 거듭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늘나라에 이를 수가 없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골로새 교회를 위협하고 있었던 또 다른 유대교적인 사상은 바로 음식에 관한 규례와 절기 등의 유대인들이 중요시한 율법적인 의식들이었다.
(골 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한 모세의 규례는 이러했다.
(레 7:20) 만일 몸이 부정한 자가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요
(레 7:21) 만일 누구든지 부정한 것 곧 사람의 부정이나 부정한 짐승이나 부정하고 가증한 아무 물건이든지 만지고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도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레 7: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 7:23)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 것이요
(레 7:24) 스스로 죽은 것의 기름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의 기름은 달리는 쓰려니와 결단코 먹지 말지니라
(레 7:25) 사람이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희생의 기름을 먹으면 그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레 7:26) 너희의 사는 모든 곳에서 무슨 피든지 새나 짐승의 피를 먹지말라
(레 7:27)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다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모세가 가르친 이 규례는 거듭난 자로서의 삶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따라서 거듭난 자라면 당연히 드러날 그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거듭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모습을 드러내려고 몸부림 쳤으니 그 삶이 얼마나 무겁고 힘들었을까?
골로새교회의 거짓교사들도 거듭난 자의 삶의 모습보다는 외형적으로 그렇게 보이려고 거룩한 체하는 금욕주의적 위선을 드러내었고 또 그 모습을 골로새 교인들에게도 가르쳤다. 그러나 진정한 성도는 거듭남을 입었으므로 이러한 일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워지게 진다.
절기나 월식이나 안식일은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율법을 완성하셨으니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백성들은 이 날들에 대해 자유한 자가 되었다. 이 날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제 초등학문에 지나지 않는 그런 일들이 되었다.
(대상 23:31) 또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에 모든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 명하신 규례의 정한 수효대로 항상 여호와 앞에 드리며
(갈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골로새교회를 위협하고 있는 이단적 요소 두 번째는 거짓 철학이었다. 초기 영지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체험(골 2:18)과 사람의 유전(골 2:8)에 근거하여 영적 지식을 내세워 골로새교회를 진리로부터 벗어나도록 유혹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주권을 부인한 자들이었다. 바르게 아는 지식에서 벗어나면 이와 같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고 결국은 구원이 허사가 되는 일을 결과한다. 이는 지금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이다.
(골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 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세 번째 이단적 요소는 금욕주의였다. 골로새교회의 거짓교사들은 엄격한 육체적 규율을 육체에 가함으로써 육신의 욕망을 억눌러야한다고 가르쳤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숭배할 수 있다고 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경건하고 겸손한 체 했다.
(골 2:20)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골 2: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골 2:22) (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골 2: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거짓교사들은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마는 것으로 거룩해질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죄인이 거룩해지는 것은 그런 것들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거듭남을 입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일이다. 거룩해 지는 이 ‘성화’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얻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사람의 노력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골로새교회를 위협하는 마지막 네 번째 위험요소는 천사숭배의 이단 교리였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우리가 어찌 직접 숭배할 수 있는가 하고 천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여야 하며 그것이 곧 겸손한 행위라고 그들은 가르쳤다.
(골 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바울은 이와 같이 골로새교회를 위협하는 네 가지 이단 사상에 대해 구체적이고 세심하게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을 가르침으로써 그들을 바른 믿음에 인도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이 일은 지금 더욱 더 크게 우리들에게 와 닿는다.
지금은 그 때보다도 더 많은 이단적 사상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세상적으로 보다 많은 사상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우리의 신앙을 위협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더 믿음의 지식을 견고하게 하여 우리의 신앙의 터를 굳건하게 하여야 한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는 표현을 통해 이 믿음에 대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골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 1:10)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경지에 이르렀고 그 결과로 그는 하나님의 그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의 글인 이 골로새서에서도 그의 그 깨달음이 글의 중간 중간에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그 사랑에 대해 깨달은 자였기에 골로새교회의 그 모습에서도 그 사랑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었다.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그리고 “너희 사랑을”이라고 한 표현들에서 이를 발견할 수 있다. 그 깨달음이 없었다면 보통은 “너희들의 착한 행실에 대해 들음이요”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믿음의 지식을 이루어 깨달은 자에게만 보이는 이 표현이 오늘 우리들에게도 있어야 할 것이다.
(골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골 1: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골 1: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
그의 사랑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골로새서 전체에 드러나고 있다. 그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드러낸 표현이 다음과 같다.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2: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골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하나님이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신 것은 오직 그의 사랑에서이다. 그가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처음부터 죄 가운데에 있었던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 것은 오직 하나님의 그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이제 그는 믿음의 지식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그 사랑을 깨달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그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친다. 이는 참된 믿음이란 바른 지식을 통해 깨닫고 그것을 행하는 것으로 완성되어짐을 의미한다.
이 행하는 일은 우리에게 결코 짐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바르게 깨닫지 못했을 때는 그것이 짐으로 드러났지만 바르게 깨달은 후에는 그것이 기쁨으로 결과하는 일이 되기에 결코 짐이 되지 않는다. 행함으로써 오히려 기쁨을 얻게 되는 그 일은 믿음에 대한 지식을 통한 그 깨달음이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울은 용서하는 그 일에 사랑을 더하라고 명하고 있다. 사랑이 더해진 용서는 그 일을 행한 자에게 진정한 기쁨을 선물로 주게 된다. 이것이 깨달은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골 3: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이 땅을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기쁨 중에 하나로 바울은 아내를 사랑하는 그 일이라고 한다. 남편된 자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기쁜 일이 바로 아내를 사랑하는 그 일이다.
(골 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